본문 바로가기
아이의서재/시집

기형도 - 바람의 집_겨울 판화 1

by 아이의말 2021. 6. 2.
320x100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우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 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320x100

'아이의서재 >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형도 - 집시의 시집  (0) 2021.06.03
기형도 - 진눈깨비  (0) 2021.06.03
기형도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0) 2021.06.02
기형도 - 봄날은 간다  (0) 2021.06.01
기형도 - 바람은 그대 쪽으로  (0) 2021.06.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