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길고양이에게 참치캔을 주고 있던 편의점 알바생의 안경 너머로 내가 들어왔다. 잠시 후 참치캔 하나를 더 갖고 나왔다. 2021. 6. 26. 옷걸이 이 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만 당신은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라 합니다 내 상의고 바지고 넥타이고 일하고 왔습니다만 내가 고생한 만큼이나 쉬고 싶을 것인데 매정하게도 옷걸이에 걸라하십니다 나는 이따금씩 옷들을 펴서 푹신한 침대에 눕혀줍니다 나 또한 그대로 소파에 누워 텔레비를 봅니다 가끔은 그대로 잠이 들어도 괜찮지않습니까만 일요일이면 옷들은 세탁기 속에서 돌려집니다 내가 회사에서 돌려지는 것처럼 온 몸이 다 젖고서야 퇴근을 한답니다 나를 지탱해주기 위해 다시 날을 세우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더렵혀지고 나를 위해 무급 연봉 계약을 하고 그대로 옷걸이 걸려 잠이 듭니다 나를 위해 더 이상 쓸모 없어질 때까지 옷걸이에 걸려 집니다 축 처진 상태로 낡아갑니다 2021. 5. 23. 어느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 : 푸른 거울 나는 어둠 속에서 시인 이상의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에는 나를 닮은 어둠이 있다 어둠을 닮은 내가 검은 기침을 하면 어둠이 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어둠이 어둠을 잉태할 때마다 더 허우적거리며 깊은 불안감에 빠진다 그런 축축한 상태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무한정삼면체의 비밀은 초승달을 만들어낸다, 매일 반복되는 불변의 현상, 직립보행하는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색깔, 새벽 내내 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만이 풍기는 색깔, 위태로이 서서 메시지를 잡고 있는 유리벽 같은 이 청춘들 현실에서는 절대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포에 떨면서 이미 다 선택된 막다른 길로 진로를 선택한 술꾼이 선택한 14번째 아해처럼 계속 도전을 선택할뿐 무의미하다고 입 속에 긴 총구를 집어넣고 열망의 숲을 달려 푸르스름한 색깔의 희.. 2021. 5. 19. 어느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 : 변함없이 아름답게 그림을 보여주기 전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틀어놓는다 배 위에는 대못으로 고정된 유리컵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바다가 담겨있다 파도가 일지않는 바다에는 침묵만이 산다 침묵은 만년필과 노트다 물속에서는 아무 것도 써지지 않는다 그 뒤로 의자에 숫사슴이 앉아있다 두 발과 다리를 초조하게 모으고서 투박하게 두 손으로 유리컵을 잡고 두 눈을 부릅뜨고 안을 들여다본다 사슴의 상반신은 F5호 캔버스에 들어가 있다 사슴의 머리에 난 뿔은 액자의 프레임을 뚫고 벽지를 타고 지붕을 뚫고 하늘 위로 뻗어간다 하늘에는 해가 떠있고 달이 떠 있으며 구름이 걸려 있고 별이 반짝이고 있다 하늘 윗면에 흰 꽃이 즐비하게 놓이고 젖은 연기가 춤을 추며 그림을 그린다 문이 없는 이 미술관의 바닥에 그려진 이 그림은 돈 지오반.. 2021. 5. 16. 어느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 : 흑을 지나 이 사건은 누군가 르네 마그리트의 겨울비에서 신사의 중절모 대신 흰 복면을 씌워놓으면서 제기되었다 거대한 마을로 형성된 박물관에 들어선다 많은 감독들과 작가들이 이곳에 색을 입혔다 그러나 관중들의 눈에는 그냥 흑백일 뿐이다 아무리 칠해도 허상은 허상일 뿐인 것이다 백야의 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높은 건물들이 총을 맞고 쓰러진다 사람들은 피할 곳을 찾아 도망다닌다 여기저기 포탄이 떨어지고 파인 흙구덩이에서는 물이 넘쳐나고 불이 넘쳐나고 총알이 넘쳐난다 상영 내내 관중들은 의자 뒤에 숨어 총알을 피하지만 이것은 스크린에서만 일어나는 시건이다 마치 박물관에 진열된 사람들처런 줄을 지어 그림들을 관람하고 영상을 시청하는 눈에 총을 든 관중들은 난간에 기대어 난간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 끔찍한 사건.. 2021. 5. 16. 슬픔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네 가슴에 아이를 안고 웃던 남자는 많이도 늙었네 아이는 어느새 자라 도시로 떠나버렸고 남자는 아이 대신 낡은 아코디언을 안았네 목포의 눈물처럼 인생은 참으로 긴 슬픔이지만 가슴을 쫙 펴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면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네 삶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중년 부부의 바램처럼 이제 새로운 부부는 중년부부를 닮아가네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2021. 5. 16. 콩나물국 아침아홉시면일제히검은봉지를뚫고나와누렇게뜬얼굴로모니터자외선을받고있다 곧오전회의시작합니다회의실로모여주세요오늘의주제는미래먹거리창출입니다미래사회에는사람의몸둥이가퇴화되고머리만남게된다고합니다그럼우리는무엇을팔아야할까요뭐야그러면우주를떠도는행성처럼머리만떠돌아다니는거아냐정말끔찍하다그럼옷이필요없게될테니아침마다옷고를일이없어지니좋겠네요그대신모자가유행한다는생각은안해봤어그거네요모자모자를팔면되겠어요모자에장치를달아서뇌를최상의상태로유지할수있게해주는거예요뭐항온항습기나냉난방기를달라고그러지좋네요그거예요실외기프로펠라를키워서공중을날게하면정말날아다닐수있겠어요최과장님좋은아이디어입니다모자에날개를달아주자니이걸로위에보고하면되겠습니다잠시만요그런데몸이완전히사라지면저희인간의번식및생존기능은어떻게되는건가요말이안되는가설인것같습니다김대리참답답하네당연히몸이있겠지콩나물.. 2021. 5. 6. 두려움에 대하여 신발주머니 든 아이 느린 발 걸 음 바닥을 본다 고개 숙인 만큼 느린 발 걸 음 등교시간 가까와온다 2021. 5.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