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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 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 내려 쪼이는 잔디밭. 함빡 피어난 따알리아. 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 시약시야, 네 살빛도 익을 대로 익었구나. 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 암사심 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 물오리 떠 돌아 다니는 흰 뭇물 같은 하늘 밑에, 함빡 피어 나온 따알리아.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따알리아. 2021. 6. 10.
정지용 - 카페 프란스 옴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쩍 마른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 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心臟)은 벌레 먹은 장미(薔薇) 제비 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롵(앵무 鸚鵡) 서방! 꾿 이브닝!" "꾿 이브닝!" (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갱사(更紗)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려!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大理石)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2021. 6. 10.
정지용 - 유리창2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잦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 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섯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랏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뺌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 머언 꽃! 도회에는 고운 화재가 오른다. 2021. 6. 9.
정지용 - 유리창1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2021. 6. 9.
정지용 -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2021. 6. 8.
정지용 - 호수(湖水) 1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2021. 6. 8.
정지용 - 조찬 해ㅅ살 피어 이윽한 후, 머흘머흘 골을 옴기는 구름. 길경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차돌부리 촉 촉 죽순 돋듯.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2021. 6. 7.
정지용 -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 202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