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x100

그림을 보여주기 전에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틀어놓는다
배 위에는 대못으로 고정된 유리컵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바다가 담겨있다
파도가 일지않는 바다에는 침묵만이 산다
침묵은 만년필과 노트다
물속에서는 아무 것도 써지지 않는다
그 뒤로 의자에 숫사슴이 앉아있다
두 발과 다리를 초조하게 모으고서
투박하게 두 손으로 유리컵을 잡고
두 눈을 부릅뜨고 안을 들여다본다
사슴의 상반신은 F5호 캔버스에 들어가 있다
사슴의 머리에 난 뿔은 액자의 프레임을 뚫고
벽지를 타고 지붕을 뚫고 하늘 위로 뻗어간다
하늘에는 해가 떠있고 달이 떠 있으며
구름이 걸려 있고 별이 반짝이고 있다
하늘 윗면에 흰 꽃이 즐비하게 놓이고
젖은 연기가 춤을 추며 그림을 그린다
문이 없는 이 미술관의 바닥에 그려진 이 그림은
돈 지오반니가 지옥에서 다시 도망쳐 나온다해도
변함없이 그림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돌아올 수 있는 건 무한한 것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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