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0개의 계절/여름

풀(POOL)

by 아이의말 2021. 5. 16.
320x100

하얀 캔버스 위로 한 줄로 선 작업자들
똑같은 슬리퍼를 싣고 밀대를 밀고 나가면
그 뒤로 하늘색 물감이 번지기 시작한다.
쓱윽쓱 쓱윽쓱

한 아이의 발이 물장구를 치자 시작되는 경기
팔을 크게 벌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와
그 앞으로 접형을 하는 아이와 그 앞에 아이들
한 아이가 결승선으로 손을 뻗자
호루라기를 힘껏 부는 선생님

그 뒤로 공중에 그려지는 분홍색 수영모자에 물안경
오리튜브에 완전무장한 숫총각
유아용 다이빙대 위에 위태롭게 서 있어
이것이 바로 인생의 전환점 용기를 내라구, 친구

그 아래로 무지개 파라솔
흰 벤치에 걸터앉아
낄낄 수다를 떠는 숙녀아가씨들
하지만 다이빙대 옆에 늠름한
구조요원이 여기를 봐주길 바라는 건 비밀-

한쪽 구석에서
수영헬퍼를 잡고 수영연습을 하는 여자와
헬퍼를 잡아주며 걷는 남자
서로 눈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것이 바로 썸띵...

허공에 떠있는 비치볼
하늘 높이 뻗은 손들
함박웃음을 짓는 얼굴들
하지만 아무도 공을 잡을 순 없어
공은 공중에 걸려 내려올 생각이 없으니까
누구든 이 풀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어
여름날의 열기 속에서
막 첫사랑에 눈 뜬 아이처럼
수심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신나게 물장구를 치는 아이처럼
칵테일 속에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풀 속으로 녹아내리는 사람들.

우리의 여름날은
한 여인의 캔버스안에서 그려지고 있다.

320x100

'50개의 계절 > 여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루스  (0) 2021.05.16
단골집은 언제나 편안해  (0) 2021.05.16
여름밤  (0) 2021.05.16
  (0) 2021.05.16
수박  (0) 2021.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