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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 밤 산하의 어둠은 누구의 것인가 낮부터 내린 비는 밤까지 이어져 내린 자리마다 열주를 심어놓고 전등불을 밝히는 늙은 순찰원은 어둠을 몰아 어둠을 몰아내어 살아남은 머릿수를 헤아려 순한 양들은 입을 다문 채 더럽혀진 구두코를 닦으나 시큰거림은 도무지 가시지 않고 희미하게 희끄무레하게 번지는 자정 눈을 감아도 꺼지지 않는 백야 밀려오는 잠을 떨쳐내며 늘어난 인대를 잡고 절뚝거리며 몸을 숨기는 어둠 속의 이리떼 울음소리는 내리는 빗소리 같아 산하에 어둠만이 온전한 어둠을 가졌네 아 이 노동의 끝은 언제쯤 광복을 맞나 아무리 잠을 청해도 밤은 오질 않네 이 시큰거림은 도무지 가시지 않네 2021. 5. 16.
Volaré 성곽을 쌓아올린 자들의 두려움을 지키는 자 당신은 유리매스속에 켜진 벽부등처럼 서있어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매일 일만 하고 있잖어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색깔은 도시의 아스팔트 사이에도 물들어 있어요 철탑에 오르려 하지말아요 당신은 목련꽃처럼 여리게 매달려 있을 뿐이에요 낮인데 그대로 불을 끄고 잠이 들건가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향기는 도시의 구둣발 사이에도 차올라 있어요 당신. 사랑의 달콤함을 믿어요 봄을 이해해요 당신과 같이 아름다운 봄을 말하고 싶어요 당신 악기를 연주해 감미로운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날개가 도시의 빌딩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어요 돋아나요 이제 v.. 2021. 5. 8.
한강공원 갓 돌린 코인세탁기에서 반바지와 반팔티를 꺼내 입어 도시의 틀에서 벗어나 차가운 탄산수 달콤한 쥬시 파란 커플 자전거 그대와 함께 달리는 한강공원 (river in the park riding love- riding love- riding love on the river) 원글라스 와인팩 담백한 스테이크컵 음악을 틀어줘 옐로우텐트 빵빵한 앰프가 있어 여기로 모여 여름밤 폭죽을 터트려 팝핀댄스 뮤직 스타트 그대와 함께 춤을 추는 한강공원 (river in the park dancing love- dancing love- dancing love on the river ) (river in the park dancing love- dancing love- dancing love on the river ) 2021. 5. 2.
산책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방역차는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고 나는 연기 속의 길을 걷고 있어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겠지 그러나 맑은 저 계곡물처럼 우리는 멈추지않고 계속 흘러갈 거야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잊혀지는 존재 그러나 우리는 또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푸르게 물들 거야 한없이 흔들고 흔들리면서 조용히 익어갈 거야 그러나 다시 어둠이 오겠지 긴 어둠일 거야 여름에만 우는 벌레들만이 우리를 기억해 밤마다 노래를 부르지 밤하늘에는 별들이 일어날 거야 우리가 잠든 사이에 잊혀져가는 우리의 밤을 기록하기 위해 언제나 빛을 낼 거야 2021. 5. 2.
가을, 몰락해가는 비행선 안에서 찬 공기 숨 죽인 채 1호기의 추락 우리 관계는 끝에 도달한 점멸해가는 불빛 끊어질 듯 끊어지지않는 희미한 서로가 서로를 서로에게 조용히 어떠한 기억도 남지않게 모조리 태워 길가에 내다버리고 나무아래 수북이 쌓인 밤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순서대로 소멸해 가는 밤 사그라드는 낙엽들 사그라드는 관계들 우리는 한층 더 차가워진 상태로 수신기를 잡는다 (뚜뚜뚜뚜뚜) 가을, 몰락해가는 비행선 안에서 (뚜뚜뚜뚜뚜) 가을, 몰락해가는 비행선 안에서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순서대로 수신호를 보낸다 2021. 5. 2.
해피밀 우리들은 아이처럼 신이나 주문을 건다 "히어로 하나 주세요." 우리는 간단히 히어로 하나를 얻는다 매일 하나씩 책상 위에 히어로가 늘어난다 히어로와 함께 밤을 지키는 우리들 밤의 무게를 지탱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히어로가 있다 견딜 수 있다.... 다음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아이처럼 신이나 주문을 건다 "히어로 하나 주세요."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히어로는 끝났습니다." "벌써요? 그럼 다음은 어떤 건가요?" "오늘부터는 쥬라기 공룡입니다." "공룡이라니, 멸종된 공룡이라니. 그럼 우리는 누가 지키나요?" "네? 손님, 죄송한데 주문하실 건가요? 뒤에 줄이...." "눼... 어쩔 수 없죠. 공룡 하나 주세요ㅠㅠ" 그날로 책상 위에는 공룡들이 뛰어다닌다 우리는 초식동물처럼 공룡들에.. 2021. 5. 2.
우리는 나무로소이다 겨울, 우리는 알몸으로 뜨거우다 봄, 싹이 트듯 울음이 터지자 여린 잎을 안고 흔들리는 우리는 여름, 폭풍처럼 자라난 아이를 한 팔에 끼고 서서 밥을 때우는 우리는 가을, 강을 오르는 연어떼 속에 있다 첫째가 집을 떠나자 우수수, 떠나는 아이들 힘을 다하고 가라앉는 연어떼 속에 우리는 겨울, 텔레비를 틀어놓고 먼발치서 연락을 기다리는 부모를 많이도 닮은 우리는 엄마아빠가 되어간다 봄여름가을겨울 우리는 부모가 되어간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간다 2021. 5. 2.
가을 단편 도대체 구름은 물을 먹고 왜 먹먹해지는 걸까 늘어난 먹구름들이 노을에 발을 담근다 온탕에 불그레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훗날 그것은 울음소리가 되겠지만 노인들이 노약자석을 찾아 노을 진 곳으로 간다, 새들이 하늘을 배회하다 노을에 빠져 죽는 것과 같이. 바람이 노을을 가지고 사라진다. 가을, 바람의 연료는 무엇인가 푸른 나무를 송두리째 훑고 달아나는 바람 잎들이 노을에 젖어 탈색되고 여인들은 가을 옷을 꺼내 입고 사람들은 도시에서 시골 산천으로 떠난다 바람이 들판 위에 노을을 뿌리면 금빛으로 물드는 세상 아이와 멍멍이는 꼬리를 흔들며 데구루루 어른들은 바구니를 들고 와 이삭을 줍는다 서서히 내리는 어둠 곧 밤이 세상을 삼킬 것이다 바람은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돗자리와 찐 감자와 옥수.. 2021. 5. 2.
가을 이사 가을에는 나무 곁에서 잎들이 이사를 갑니다 나뭇가지 위에 새처럼 날아갑니다 훨훨 훨훨 바람에 짐을 신고 훨훨 훨훨 손을 흔들면서 하나둘 말없이 떠나갑니다 나무의 손끝에는 파란 그리움이 그리움만이 매달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고 가버린 사랑 이별은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끝없는 침묵 속으로 우리를 끌고 내려갑니다 나무는 그대로 서서 야윈 팔을 흔들며 늦은 인사를 합니다 사랑의 또 다른 방식을 배웁니다 조용히 너무나도 조용히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리들은 침묵을 사랑을 이별을 배웁니다 가을에는 모두가 이사를 갑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정처 없이 떠나갑니다 혼자 외로움을 배웁니다. 2021.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