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0개의 계절_봄
- 첫회식 한 손으로 담뱃갑을 꾸긴다 마치 대학교 때 버리고 온 단칸방처럼 시대는 달고 달아서 낡아버렸고 더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술은 잔을 채우며 곤두박질친다 “자네 이슬을 마시겠는가.” “이슬은 새벽에만 마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오늘도 야근이군요.” “아니지. 철야겠지.” “아...” “밤이 줄어들수록 늘어나는 것이 있으니 빈 병과 빈 잔과 빈자리들 새벽은 그렇게 빈 것들을 주우러온다네.” “밤을 지새우는 동지여. 안주로 회 어떤가?” “해는 아침에만 뜨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오늘도 집에 못 들어가겠군요.” “아니지. 우리 일터가 집이 아닌가.” “아...” “자-자- 자네 잔이 비였지 않는가 어서 술을 채우게 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네 한 잔이라.. 2021.05.16
- 오랜만에 봄이 찾아온다고 한다 말번 감시원의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 간다 민둥산이 된 세상 잘린 밑동이 간지러워 아이는 밤마다 운다 집집마다 새싹을 피우겠다며 품 속에 흰 천을 마련해두고 퍼런 눈물을 흘리 운다 길 잃은 아이마냥 피붙이를 찾는 어미마냥 검어진 속을 뻘겋게 피우오면 다 함께 숨을 죽이고 숨을 죽이고 숨을 죽여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린다 3월 1일 동쪽 하늘 위로 힘차게 해가 솟구쳐 오른다. 2021.07.18
- Volaré 성곽을 쌓아올린 자들의 두려움을 지키는 자 당신은 유리매스속에 켜진 벽부등처럼 서있어요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매일 일만 하고 있잖어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색깔은 도시의 아스팔트 사이에도 물들어 있어요 철탑에 오르려 하지말아요 당신은 목련꽃처럼 여리게 매달려 있을 뿐이에요 낮인데 그대로 불을 끄고 잠이 들건가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향기는 도시의 구둣발 사이에도 차올라 있어요 당신. 사랑의 달콤함을 믿어요 봄을 이해해요 당신과 같이 아름다운 봄을 말하고 싶어요 당신 악기를 연주해 감미로운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요 volare volare 제 손을 잡아요 봄이 왔어요 봄의 날개가 도시의 빌딩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어요 돋아나요 이제 v.. 2021.05.08
- 오느래 희망 1. 작은 숲이 도시로 배달되어 왔다 오래된 감지에 쌓여 도착했다 끈을 푸는 순간 풀들이 튀어나와 방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 신비한 야생의 버라이어티 어느새 숲 속이 되어있는 것이다 내 곁으로 두 아이가 달려온다 하루 종일 숲 속의 꽃들에게 물을 주고 품 속 가득 풀을 안고 돌아오는 시간 아버지는 한 뼘 더 자라나 산처럼 변해 있다 2. 작은 숲을 화면 속으로 가져오는 방법 광활한 숲 속에 작은 나무집을 짓는다 긴 테이블 위에서 어른들은 밀대를 밀면서 마법을 시전하고 아이들은 바닥을 빗자루로 밀면서 마법을 배운다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몇 술의 웃음소리가 섞여 반죽이 되어가는 오늘 숲 속의 열매들이 몸을 씻고 품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드는 시간 어머니는 겨울밤 아궁이에 불을 지피듯 따듯한 .. 2021.05.02
- 바람이 사는 곳 초봄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마을 뒷동산 새들이 날아드는 곳 산짐승과의 경계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돌담 사이로 발소리 많아지면 꽃이 흐트러지는 곳 그가 자주 지나던 곳 햇살도 쉬어 가는 곳 푹- 꺼진 무덤 앞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나비가 날아드는 곳 그 너머에 울창한 나뭇 사이로 어둠이 가라앉은 곳 한 발 더 다가서면 낮과 밤 경계가 사라지는 곳 침묵이 시작되는 곳 그가 처음 태어난 곳 언제나 어디서나 눈을 감으면 보이는 곳 그가 사는 곳 바람이 사는 곳 모든 곳이 시작되는 곳 그 곳으로 가는 것이다. 2021.05.02
- 동대구역에서 긴 시간을 늘어놓고 서른한번째 숫자를 센다 숫자는 혼자일 때만 셀 수 있는 존재 당신을 기다린다는 철로의 종착역에는 포도주를 가득 채운 와인잔의 죽음 저 멀리 누군가의 실루엣처럼 과거의 모습들은 아른거리며 사라지고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가사가 없다 어김없이 기차는 들어오고 떠나기로 한 약속시간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가만히 두 눈을 감아본다 그 순간 모든 것은 멈추고 나의 사랑은 서른하나에서 기록된다 2021.05.01
- 인트로 처음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슬픔이 쉽게 찾아와서 그냥 시간을 보내기만 해 글을 계속 써왔지만 자유로운 새가 될 수 없었던 그저 그런 아저씨 매일 같은 음악을 들어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겠지 술을 마셔 음악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싶어 늙어간다는 것은 서로를 응원하는 일 좋은 말들을 잊지말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폰처럼 세상을 밝히는 하나의 빛이 되자. 2021.05.01